보쿠아카] 생각

보쿠아카 2016. 8. 10. 00:26

여느때와 같은 소음이 가득한 체육관은 저녁이 되면 한산해 진다. 쪼그려 앉아서 숨을 고르는 동안 반듯한 이마를 타고 흐른 땀이 아직 젖살이 채 빠지지 않은 뺨을 따라 흐르다 진득하게 떨어져 내린다. 부원들은 모두 집으로 향했다. 이따금 그렇게 부원들이 돌아가고 난 뒤에도 아카아시는 남아있었다. 열을 끓어 올리던 한창때의 학생들이 빠진 체육관은 누군가가 뿌린 파스냄새와 체육관 특유의 냄새가 가득했고, 서늘했다. 살짝 소름이 돋은 팔을 손바닥으로 감싸 몇번 쓸고 숨을 길게 내쉬었다. 여섯 명이 하는 배구지만 세터는 사령탑이다. 그 누구보다 냉철해야 하며, 그 누구보다 뛰어난 집중력으로 상대를 읽어내야 한다. 완벽한 세터는 백퍼센트, 그 이상으로 팀의 능력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세터다. 천재적인 카라스노나, 천재를 찍어 누를 센스의 아오바죠사이나, 다른 이들이 단단히 받치고 있는 네코마, 에이스를 믿지 못할 충성심으로 따르는 시라토리자와같은 학교들과는 길을 달리하는 만큼 다른 방식으로 나아가야 했다. 견본이 없다는 건 그만큼 답답하고, 힘든 길이다. 아카아시는 코트도 치워진 넓은 체육관에 덩그러니 서서 차가운 공기를 만끽하다가 한 가운데에 주저앉았다. 늘 코트를 꽉 채우는 사람들과, 환호와 탄식이 엇갈리는 경기와는 또 다른 공기는 새로운 감각을 부르기에 충분했다.



아무렇게나 주저앉아 발을 널부러 놓고 다리 사이에서 공을 작게 튕기며 당일 연습경기를 되돌아 보았다. 컨디션이 안 좋았던 사람, 유난히 컨디션이 좋았던 사람, 그 와중에 컨디션의 상태와는 상관없이 일정하게 플레이 하는 사람, 손이 평소보다 많이 가는 사람, 새로운 걸 연습하거나, 생각하는 것처럼 반응이 미묘하게 다르던 사람. 손가락이 공위에서 제멋대로 굴러다녔다. 손바닥 전체를 뭉근하게 문지르기도 하고, 손목까지 지압하듯 굴리다가 팔 언저리에서 손끝까지 되돌아오고. 그러다 문득 아무렇게나 벌리고 앉은 다리를 보면 보쿠토가 생각난다.


아카아시의 다리는 거의 시합 내내 압도적으로 강한 점프를 해 내야 하는 보쿠토의 것과는 많이 달랐다. 아카아시는 길고 가느다랗고, 유연한 근육이었다. 쭉쭉 뻗어서 울퉁불퉁하거나 무겁게 자라지 않는 종류의. 오히려 팔이 더 단단하지. 공에서 뗀 손을 쥐락펴락하고 있자면 잘 정리된 손톱이 조금 자라있다. 정리 할 때가 됐다. 엄지손가락으로 다른 손톱의 끝을 문질렀다. 보쿠토의 다리는 좀 더 탄탄하고, 펌핑이 잘 되는… 이를테면 벌크업 상태를 항시 유지하는 근육 같았다. 점프를 하게 위해 내려앉으며 팔을 뒤로 뻗으면 팽팽하게 당겨진 팔과는 다르게 허벅지나 종아리는 금방이라도 터질 폭죽처럼 부풀어 오른다. 그러다 점프하면 코트 위로 그 맹수를 닮은 눈동자를 쑥 올려내는 것이다. 그 눈은 딱히 마주해도 상관은 없지만, 한순간 눈빛이 흔들리게 된다. 아카아시는 그 같은 맹금류는 아니었다. 보쿠토는 털이 한껏 부풀어 오른, 사냥 직전의 부엉이 같은 눈동자로 상대를 본다. 스쳐지나간다고 할 만큼 짧은 순간이지만 그 눈을 마주하면 떨게 된다. 공포라기엔 부족했고, 온 몸의 솜털이 곤두서는 전율이라고 하면 엇비슷한 비유가 될 것 같았다. 희번득이는 눈동자는 떠올리기만 해도 온몸의 근육이 바짝 긴장하게 만든다. 저도 모르게 흠칫 떨린 허벅지 근육을 공으로 눌러 문지른 아카아시는 한숨을 쉬었다.



체격차이도 많이 나는 두 사람은 파이팅을 외치느라 손을 한 데 모으려 내민 팔의 두께나 색에도 차이가 났다. 조금 가늘고 흰 편인 아카아시와는 다르게 번개 떨어지는 소리를 내는 스파이크를 날리는 보쿠토의 손은…. 아, 젠장. 아카아시가 몸을 잔뜩 웅크렸다. 망할. 눈을 꼭 감고 입술을 사려 문 채 이마를 차가운 바닥에 대고 있다가 옆으로 데굴 굴렀다. 어린 아이처럼 웅크린 몸 한 가운데에는 공과, 바짝 긴장한 배가 맞닿아 있다. 탄식처럼 숨을 내뱉으며 아랫배를 누른다. 벌겋게 달아오른 귓불을 찬 바닥에 부벼 열을 식히려다 식은땀이 고이는 이마를 바닥에 눌러 문질렀다. 피부가 짓이겨지는 고통은 이미 변질되어 신경 말초를 자극했다. 아카아시는 잔뜩 웅크리느라 맞닿은 허벅지가 저도 모르게 비벼지는 느낌에 스스로 최악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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