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쿠아카] 시선

보쿠아카 2016. 8. 10. 00:25

아카아시가 손가락을 다쳤다. 팀워크의 문제라거나, 그런 문제가 아니고 순전히 상황과 실수와 불운이 한 데 뭉쳐서 생긴 일이다. 손톱을 다치거나 손가락을 다치는 일은 종종 있는 일이었다. 아카아시는 공을 많이 만지는 선발선수였고, 연습량은 그의 실력에 비례했다. 그날 손가락을 다친 것은 단순한 것이었고 파스만 뿌리면 될 일이었다. 그러나 보쿠토는 아카아시에게 공을 안겨주며 얌전히 있으라 했다. 아카아시는 가만히 서서 스트레칭을 하고 가볍게 공을 팔로 받고 튕겨내며 지루함을 달래고 있었다.


채 완벽하게 성장하지 못 한 근육이 탄성 있게 잡힌 팔에, 공이 깊고 진득하게 들러붙었다가 튕겨났다. 단단한 팔에 한차례 파문이 일고 나면 공은 저 위로 떠올랐다가 다시 팔 근육을 누르며 붙어온다. 보쿠토는 가볍게 밴드를 감은 손가락을 겹친 아카아시를 흘끗거렸다. 손목을 따라 올라가면 근육이 단단히 겹쳐져 도톰한 팔이 이어졌다. 힘이 들어 갈 때엔 바짝 갈라지다가도 느슨해지면 보기 좋은 굴곡이 지는 팔은 평소엔 만지면 탄력 있고 부드러운 느낌을 가졌다. 근육이 잘 패인 팔뚝은 보쿠토의 것과는 다르게 근육이 잡혀 있다. 세터와 스파이커의 차이는 근육 두께의 차이뿐만 아니라, 팔이 돌아가는 각도에 따라 근육이 다르게 잡혀 있어 이따금 보쿠토의 시선을 끌곤 했다.

도톰한 팔을 따라 올라가다보면 조금 좁아지는 구간을 지나고, 단단히 뼈로 이뤄진 팔꿈치가 있다. 배구를 하다 보면 조심해야 할 관절은 연습 할 때나, 특히 겨울엔 꼭 제대로 보조 장비를 착용하라고 하는 부분이다. 지금도 주변의 성원에 못 이겨 양 팔꿈치에 착용 한 까만 보호대가 있다. 단단히 선 근육이 보호대 끄트머리에 꾹 눌려 삐져나온 모양새를 보아 하니, 아마 단단히 자국이 날 것 같았다. 보호대를 차고 뛰어다니고 나면 그 부분만 땀이 차서 유달리 촉촉하다. 아카아시는 몰랐겠지만, 보쿠토는 그 느낌을 좋아해서 이따금 부러 그의 팔을 잡고 이끌기도 했다. 손가락이 멋대로 움직여 피부 위를 문지르는 걸 그는 알까?


오버핸드로 자세를 바꾸면 근육 모양도 바뀐다. 쭉 뻗은 목에 울대가 두드러지고, 목선이 바짝 선다. 그 골을 타고 땀이 흐르면, 지켜보던 사람은 침을 꿀꺽 삼키게 된다. 목울대를 물어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짓이기고 시선을 올리면 올려다보며 집중하느라 벌어진 입술이 있다. 하얀 치아가 보이고, 간혹 입술을 핥기도 하는 혀도 보인다. 아, 하고 뭔가 생각 한 보쿠토는 고개를 저었다. 몹쓸 생각이다. 저 날카롭게 올라 간 눈매하며, 조금 얄팍한 입술이 일그러지는 것은 생각보다 선정적일지 그는 모른다.


집요한 시선에 입술을 일그러트린 아카아시가 눈매를 구기고 보쿠토를 잠시 노려봤다. 야생의 그것과 같이 반질거리는 눈동자를 마주 한 순간, 그는 수족처럼 가지고 놀던 공을 놓쳐버렸다. 단단히 붕대를 감아 자유롭게 펼쳐지지 못 한 손가락에 툭 걸린 공이 아차 하는 사이 엉뚱한 곳으로 튕겼다. 누군가가 언더로 살린 공은 아주 자연스럽게 아카아시에게 향했다. 아카아시의 시선이 공으로 옮겨갔고, 오버로 받기엔 애매하게 오는 공에, 그는 자세를 낮췄다. 보호대를 한 한쪽 무릎이 바닥에 닿을 듯 굽혀지고 손을 가볍게 겹친 팔이 쭉 앞으로 내밀어졌다. 바짝 긴장한 종아리와 허벅지가 부드럽게 거의 앉았다, 일어서는 일련의 동작을 반복하는 사이 트레이닝복 바지가 가볍게 팔락였다. 아, 그러니까, 오늘은 검은색. 아카아시가 들었다면 혐오스러운 것을 본 얼굴을 할 만한 생각을 스스럼없는 얼굴로 한 보쿠토는 앞서 감상했던 팔을 다시 한 번 훑었다. 공이 팔에 가볍게 부딪혔다 튀어 올랐고 아카아시는 언더로 세 번 정도 더 공을 띄웠다. 조금 앉았다가 공을 밀어 올리듯 부드럽게 이어지는 동작이 물이 흐르듯 자연스럽다. 공에 다시 집중하느라 벌어진 입술 사이로 하얀 치아가 보였다. 그리고 무언가 생각하는 듯, 바짝 선 혀가 윗입술을 핥았다.


보쿠토는 연습도중 한눈 판 벌로 뒤통수에 공을 맞았다. 죄송합니다! 하는 우렁찬 목소리와 한눈판 벌이라는 목소리가 쨍하게 울리는 와중에, 선명하게 자신을 돌아보는 한 쌍의 눈동자에 보쿠토는 고개를 들고 아카아시를 내려다봤다. 말려 올라간 입 꼬리가 사냥을 준비하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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